
TVN 토일드라마
2024.10.12-2024.11.17 (12부작)
기획: CJ ENM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스튜디오N, 매니지먼트엠엠엠, 앤피오엔터테인먼트
연출: *정지인/극본: 최효비
(*대표작 '옷소매 붉은 끝동')
의상: 조상경/미술: 한지선/음악: 장영규
웹툰원작: 서이레, 나몬 - 정년이
출연: 김태리, 신예은, 라미란, 정은채, 김윤혜 등
촬영기간: 2023.10.20-2024.06.15(사전제작)
요즘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하여 드라마를 만드는 일이 많아졌다. 아마 기존에 있는 IP와 스토리를 활용하니 제작하기도 쉬울 것 같고, 보장된 스토리와 팬층이 있으니 흥행하기도 더 쉽다는 판단에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원작이 있다는 점이 오히려 악수가 되는 경우를 더 많이 본 듯하다.
전달하는 매체가 다르기 때문에 각색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년이 또한 드라마화되면서 각색이 필요했고, 그 부분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부분이다.
특히 주연 3인방 중 1명이 완전히 삭제되어 원작팬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말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원작의 볼륨과 드라마의 볼륨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1명을 잘라내면서 각색이 제대로 안 된 게 문제지.
한 편씩 분석을 하다가 단순 리뷰로 넘어온 계기는, 3화와 4화를 보면서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주인공인 정년이에게 몰입하기는커녕, 정년이의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국극단까지 찾아온 엄마에게 기어코 국극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놓고 다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라든지, 국극이 좋다고 그 난리를 피우더니 가수를 하겠다고(물론 미련은 남아 보였지만) 금방 맘을 바꾸는 모습이라든지, 군졸 역을 맡아놓고 너무 튀어버려서 극을 망치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모습이라든지, 주변에서 다 말리는데도 말 안 듣고 득음하겠다고 하다가 결국 떡목이 되어버리는 모습이라든지...
안타깝고 안쓰럽기보다는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소위 말하는 지팔지꼰, 스불재 아닌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몰입이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몰입이 안 되는 것은 정년이뿐만이 아니다. 주요 인물들 모두 더 많은 서사가 있어 보이는데 제대로 풀리지 않고 극이 전개되다 보니 '갑자기 왜 저래...?' 하는 장면이 많다. 인물 서사의 많은 부분을 시청자가 짧은 장면들만 보고 유추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며 보는 시청자가 몇이나 될까?
이 모든 문제는 12부작으로 다 풀어낼 수 없는 볼륨의 이야기를 억지로 구겨 넣는 데서 온다. 그런데 심지어 굳이 넣었어야 했는지, 굳이 이렇게 길게 보여줬어야 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있어서 더더욱 각색이 아쉽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정년이 잠시 가수 준비를 하다가 돌아온 에피소드는 아예 들어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국극에 대한 이야기와 그 안에서 정년과 영서의 라이벌 구도, 국극단원들의 우정과 사랑, 이런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고 싶었다면 그 에피소드는 빼도 됐을 텐데... 원작에서 큰 줄기를 차지했던 에피소드라서 억지로 넣은 느낌이 강하다. 이미 주인공 1명을 아예 들어낸 거, 에피소드 하나 들어내는 게 뭐 어떻다고?
반면 인물들의 성장이나 관계성의 변화는 10화까지 오면서도 변함이 없다. 애초에 정년의 목표가 '성공'인지 '국극'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으니 단순히 돈벌이로 국극을 하려던 것에서 정말로 국극이 좋아서 국극을 하려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 자체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솔직히 원작이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전혀 모르겠다.
정년과 영서는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가 또 서로 미워하는 것 같았다가 왔다갔다 하는데 그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뚜렷한 개연성이 없다. 옥경과 혜랑은 계속 비슷한 문제로 다투고, 영서와 기주는 여전히 같은 문제로 부딪히고, 소복과 용례(공선)도 그렇고 정년과 용례도 그렇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갈등의 발전이 없다.
돈을 들고 튄 고부장이나 온갖 나쁜짓을 해댄 혜랑은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고 사건 자체도 다 흐지부지 넘어가고, 인물들이 충분히 고민하지도 않고 어떤 계기도 없이 얼렁뚱땅 사건 하나하나가 해결되고 넘어간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갈등의 방식도 구시대적인 부분이 군데군데 보인다.
한 마디로 중심이 없다. 장면 하나하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보면 무슨 의도인지 짐작은 가고 다 중요하다는 걸 알겠지만, 연결이 안 된다. 중간중간 잘라내고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씬과 대사를 그냥 줄줄이 엮어놓은 느낌이다.
다만 국극이 너무 길다는 평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국극 실황을 보여주는 듯한 연출로 정말 국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다른 드라마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특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국극 씬이 필요없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년이에서 국극은 인물들의 심리나 관계성, 전반적인 극의 흐름을 대변하거나 정년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무대로 쓰인다.
정년이 처음 본 국극은 자명고로, 여기서 옥경은 "이 어찌 태평성대란 말인가!"라는 대사를 남긴다. 이는 고여가는 매란국극단의 상황을 암시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옥경의 심리를 대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후 자명고의 무대 세팅이나 의상 등을 바꾸고 영서와 주란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넣음으로써 고인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는 암시를 넣는 동시에, 정년에게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연기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다.
춘향전의 경우 처음으로 정년이 국극 무대에 서는 한편 정년과 영서의 라이벌 구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정년과 영서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고, 사실상 이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국극을 제대로 보여준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 또한 필요한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바보와 공주의 경우 옥경과 혜랑의 관계를 대놓고 비유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관계와 서사를 따로 보여주는 대신 국극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효율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본다. 다만 영서가 자신의 실력으로 온달 아역 자리를 따냈다는 점을 좀 더 강조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요즘 트렌드가 12부작으로 가는 추세라는 건 알겠지만, 12부작으로 다 담기 어려운 이야기도 분명 존재한다. 16부작 정도만 되었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았으리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고 보기 드문 여성서사와 국극을 보는 재미가 크기 때문에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사정으로 12부작이 되었겠지만,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가위질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중심을 잡고 곁가지를 쳐내고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 집중했어야 한다고 본다. 국극에 대한 이야기, 정년의 성장과 라이벌 구도, 국극단원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인물들의 성장과 변화, 인물들 사이의 관계성, 과거 서사 또한 좀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결국 드라마는 인물이 중심인데, 꼭 넣어야 하는 사건과 장면을 넣느라 급급한 듯한 모양새다.
극중 그런 대사가 나온다. 제일 중요한 건 윤정년만의 방자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거라고.
같은 맥락에서 정년이 드라마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드라마 버전의 정년이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거 아니었을까?
좋은 이야기를 두고 정작 중요한 걸 놓쳤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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